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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프로의 LPGA 뒷담화-84·최종회] 그래도 나쁜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많다

내가 프로가 된 후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바로 코리안 미팅이었다. 여러 골퍼 부모님이 눈물을 보이며 '정말 시합보다 더 힘이 드는건 마주칠 수밖에 없는 한 두명의 부모를 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선수는 골프만 치고 부모는 열심히 뒷바라지만 하는줄 알았지 그 뒤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과 무례함 비매너 배려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 볼 수 없는 철저한 이기주의가 판치는 곳인지.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많은 사람들이 모를 것이다. 서둘러 미팅을 마치자 P 선수가 나에게 왔다. "언니 힘들었지? 저 무식한 인간이 변하겠어?!" 또 다른 P 선수가 말을 이었다. "언니 상대 안하는 게 최고야. 언니만 상처 받았지. 정말 이게 뭐야!" 너무나 고맙게도 후배들은 끝까지 노력했고 나에게 따뜻한 마음을 줬다. 그리고 협회에선 이 자리가 이렇게 어려운 자리인지 몰랐다며 너무나 미안해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엔 선수대신 통역관을 세우겠다는 이야기를 했고 얼마 후 따로 통역사를 두어 선수가 피해보지 않도록 노력했다.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내가 다친 맘을 추스르기엔. 왜 우리는 문제를 개선하고 발전시키고 단합하지 못할까? 이유는 한가지. 나밖에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종종 만난다. 이런 사람들을. 정말 나이와 장소에 관계없이 어디나 있다. 그래서 나도 바뀌었다. 그 사람들은 달라지지 않으므로 내가 그 사람들을 보는 시선이 달라져야 한다고. 그래도 아직은 나쁜사람들보다 좋은사람들이 많다. 미국에 살면서 학교에 다니고 마이너에서 메이저까지 그 넓고 큰 미국에 내노라하는 골프장에선 다 쳐봤고 좋은 사람들과 만났고 처음보는 음식도 많이 먹었고 무엇보다 내 시아가 넓어졌다. 골프라는 운동으로 많은걸 배우고 돈으로 살수 없는 내 인생의 재산에 감사한다. 그때는 힘들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눈물나게 행복했던 내 젊은 시간들이다. 이번달에 책을 냈다. "스윙머신 여민선의 골퍼의 몸." 아주 자세히 나의 실수들과 에세이를 실었고 제일 중요한 골퍼의 스트레칭과 골퍼가 가져야할 근육운동을 또 마인드에 대해 썼다. 그동안 저의 글을 읽고 공감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골프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또 한 번 감사드립니다.

2011-02-11

[여 프로의 LPGA 뒷담화-83] 코리안 미팅

나는 마지막 시합에 '톱10'은커녕 겨우 30위권에서 마무리를 해야 했다. 기회도 좋고 컨디션도 최고였는데 결국 내 작적은 실패로 돌아갔다. 나는 지옥의 레이스로 불리는 퀄리파잉 스쿨에 다시 가야 했고 실제로 그해 겨울 조이와 함께 출전해 2003시즌 풀시드를 획득했다. 좌절도 고생도 많이 했지만 LPGA 대회를 뛰며 배운 것이 참 많았다. 특히 사람에 대해서 많이 배웠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코리안 미팅' 때는 한 단계가 아닌 열 단계 쯤은 성숙해진 것 같다. '코리안 미팅'은 원래 그 당시 LPGA의 한인선수 중 맏언니였던 한 선배가 주도하려던 자리였다. 대회 때마다 몇 몇 한인 선수 부모들의 실수가 반복되자 이를 개선해 볼 의도였다. 하지만 그 선배는 미팅을 주선하기 위해 부모들을 만나면서 스트레스가 쌓이고 특히 막무가내인 몇 몇 사람들을 감당하기 힘들었는지 포기를 하고 말았다. 결국 그 다음 큰언니인 내가 '총대'를 매게 됐다. 워낙 시끄럽고 어려운 일이라 그런지 한국여자협회에선 나를 미국 상벌위원 이사로 임명한다는 서류를 부랴부랴 보내왔다. 나는 그 자격으로 라커에 공고를 붙였다. 부모님들께도 알리고 미국협회의 도움과 주선으로 마침내 자리를 마련했다. LPGA 커미셔너인 타이 보토와 부회장 경기위원들도 참석했고 한인 선수들도 대부분 모였다. 그 중엔 한인이면서도 자신은 미국 시민권자라 한국사람이 아니라고 선언한 어떤 선수는 불참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자신은 한국선수가 아니라고 불참한 한인 선수의 아버지는 일찌감치 와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타이 보토가 인사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 아저씨가 먼저 손을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질문이 있는데 저 여자는 (나를 가리키며) 무슨 자격으로 앞에 있냐"고 물었다. 타이 보토는 "우리를 도와 줄 통역이고 한국협회의 이사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그 때 그 아저씨는 보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뭐 별거 아닌네. 들을 필요도 없지. 미국협회 밑인 한국협회 말을 왜들어! 분명 그 아저씨는 '언더'라는 말을 썼다. 그러더니 더 이상 말을 듣지 말고 나가자며 모임의 분위기를 흐트려 놓았다. 또 다른 아저씨도 일어나더니 "나가자"고 선동했다. 장내는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마치 깡패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그 아저씨는 앉아 있는 다른 부모들의 의자를 발로 차며 나가라고 했다. 모두들 경악했다. 특히 나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그 때 P선수가 벌떡 일어났다. "아저씨 앉아! 지금 미팅 중이잖아. 앉으라니까"라며 외쳤다. K선수도 일어나 한마디했다. "아버지. 언니 이야기 끝날 때까지 일어나지 마." 선수들이 강하게 나오자 문제의 아저씨들도 한풀 꺾이며 자리에 앉았다. 나도 놀랐지만 미국협회 직원들도 크게 놀라는 눈치였다. 아마 어찌 할 지를 몰랐겠지만 준비해 온 내용들을 읽었고 내가 최선을 다해 통역을 했다. 그 때마다 그 아저씨는 내 통역에 토를 달았다. 너무나 화가 나서 손이 떨렸다.

2011-01-28

[여 프로의 LPGA 뒷담화-82] 골프는 끝까지 마음을 놓아서는 안된다

시합 셋째날을 맞이한 나는 안전하게 플레이해 1언더파로 마감했다. 리더보드를 보니 아직도 톱20 안에 있었다. 내일은 꼭 좋은 성적을 내 내년 시드를 받고 월요예선을 거치지 않게 하는 게 목표이기도 했지만 컨디션이 좋을 때 바짝 끌어올리고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도 샷이 잘 맞았다. 성적이 괜찮은 편이라 10시쯤 티타임을 받았고 티박스에 올라서서 조이에게 말했다. 오늘 내 목표는 무조건 "Go" 라고. 그 뜻은 파5에선 무조건 투온을 노려 이글 찬스를 만드는거고 나머지 홀들도 공격적인 플레이를 할테니까 말리지 말라고. 조이는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예스 미니"를 외쳤다. 모든 홀을 도전적으로 쳤고 후회없는 샷을 치기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마음 먹은대로 안되는 게 골프 아니던가. 전반을 2언더파로 치고 후반으로 넘어와 보니 톱10안에 이름이 보였다. 욕심이 났다. 순간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이렇게 되면 상금이 올라 랭킹이 올라가고 시드전을 볼 필요도 없고 내년에는 편하게 여행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집중력이 분산됐다. 그러더니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파5에서 드라이버를 멀리 쳐놓고 230야드 남은 세컨샷을 우드 3번으로 힘껏 때렸다. 그린도 안맞고 훌렁 넘어가 버렸다. 순간 믿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3번 우드를 240야드 이상 쳤다는 결론인데 순간 내 코치가 했던 말씀을 기억해 냈다. 인간의 몸은 설명할 수 없을만큼 신기해서 흥분을 하면 나도 모르는 에너지가 생겨 공을 더 멀리날아간다고. 내가 흥분한 건 사실이고 거리가 많이 나는 건 좋은 일이지만 프로나 선수는 무조건 일정한 거리를 내야한다. 그 중에 일정한 호흡 똑같은 보폭의 발걸음 절대 감정에 치우치지 않도록 지도를 받았다. 하지만 순간의 욕심이 그 모든 지식을 까맣게 잊어버리게 했다. 내가 원하는 결론을 얻으려면 냉정해야 했는데 통제력을 잃고 말았고 결국 트리플 보기를 했다. 어쩌겠는가. 이미 물은 쏟아졌는데. 역시 골프는 마음을 놓아서는 안된다는걸 알았다. 또 왜 코치가 냉정을 유지해야 하는지를 피같은 트리플 보기를 한 후에 마음 속 깊이 아주 깊이 깨달았다.

2011-01-21

[여 프로의 LPGA 뒷담화-81] 급할 수록 돌아가야

씁쓸한 마음을 접고 나는 나에게 집중해야 했다. 아직도 삼일이나 남았고 샷 감각도 좋아서 욕심을 내야했다. 대회 이틀째를 맞아 전날 넣지 못한 버디 퍼팅을 꼭 넣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티샷을 날리고 그린 위에서 또 다시 버디 퍼팅 기회를 잡았다. 5미터 버디 퍼팅이었는데 치고 보니 홀컵 뒤로 훌쩍 넘어가 아슬아슬한 거리를 남기고 다시 어려운 파 퍼팅을 해야했다. 빙그르 돌면서 겨우 홀컵에 떨어졌다. 버디가 보기가 될 뻔한 살짝 위험한 상황이었는다. 캐디 조이가 한마디 했다. "미니 욕심내지 말자. 오늘은 이븐파만 친다고 생각하는게 안전하지 않을까?" 맞다. 사실 나는 자신에 찬 퍼팅을 할 때에는 홀컵 뒤를 치고 떨어 뜨리기로 유명한데 문제는 그 뒤였다. 홀을 훌쩍 넘긴 공을 다시 퍼팅해야 할 때는 부담이 생겨 적지않은 실수를 하곤 했던 것. 버디를 놓쳐 열을 받았을 때는 보기로 종종 이어졌고 보기를 하면 버디를 뽑아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과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조이는 벌써 내 스타일을 꽤뚫고 있어 그런 상황을 만들지 말자는 뜻이었다. 조이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무리한 욕심을 내지 않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오히려 결과도 괜찮아 1언더로 깔끔하게 라운딩을 마쳤다. 다행히 예선을 통과하고 기쁜 마음으로 숙소로 향했다. 침대에 누워 막 끝낸 경기의 홀들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핀의 위치와 그린의 스피드 감각을 되살렸다. 그리고 3일째. 일찌감치 라커에 가서 보니 성적이 좋아 톱 20위 정도에 랭크돼 있었다. 차려진 음식을 먹고 연습장으로 향했다. 벌써 도착한 조이는 젖은 타올로 클럽의 그립을 닦고 있었다. 나는 슬슬 몸을 풀었다. 시간이 돼 티박스로 걸어가고 있는데 갤러리들이 공을 가지고 와서 사인을 해달라고 했다. 잠깐! 여기서! 선수들은 연습을 마치고 티박스로 걸어갈 땐 그냥 걸어가는게 아니다. 그날 어떤 계획으로 칠 건지 홀들을 머리 속에 그리면서 혹은 호흡을 조절하면서 걸어간다. 그러나 갤러리들은 그런 섬세함을 모르기 때문에 티박스로 가는 선수에게 사인을 요구한다. 그 요구를 들어주는 선수도 있고 아예 거절하는 선수도 있다. 그 이유는 앞서 말한대로 선수만의 특성이 있기 때문인데 갑자기 유명한 한 한국선수가 겪었던 실화가 생각난다. 이 선수도 몸을 풀고 티박스로 가는데 모자를 들고 온 갤러리가 사인을 부탁했다. '시간이 없으니 당신도 나와 같이 걸어 달라는 뜻'을 이해하지 못한 팬은 뒤에 처졌고 선수는 다시 돌아갈 수 없어 모자를 던져 주었다. 그런데 그 팬이 모자를 받지 못해 땅에 떨어졌다. 시간에 쫓긴 선수는 헐레벌떡 티박스로 가고 팬은 떨어진 모자를 주으며 불쾌해 했다고 한다. 나는 양쪽을 다 이해한다. 선수나 갤러리 입장을. 하지만 앞으로 제 글을 읽은 골프팬들은 선수의 사인을 받고 싶다면 라운딩이 끝난 다음이 좋겠고 또 경기 중인 선수들의 심정도 좀 이해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1-01-14

[여 프로의 LPGA 뒷담화-80] 에티켓 지적 많이 받는 한국선수들

아쉬운 마음으로 바로 퍼팅그린으로 갔다. 공을 놓고 스트록을 체크하고 손의 위치와 공의 위치 그리고 스탠스까지 철저하게 점검을 했다. 왜냐하면 프로도 사람인지라 힘이 들어갈 때가 있고 빨라질 때 간혹 아주 작고 미미한 것 때문에 조금씩 엇나갈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하게 확인해야 했다. 물론 나는 코치와 함께 다닐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비디오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면서 내 스윙을 내가 스스로 보고 분석하고 무엇이 달라졌는지 확인하곤 했다. 특별히 문제되는 게 없어서 라커에 들어가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는데 한 한국선수가 음료와 스낵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들고 나갔다. 그 모습을 본 미국선수가 한마디 했다. "저 선수는 왜 매번 음식을 밖으로 싸가지고 나가서 식구들을 주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토했다. 맞다. 라커실에 있는 모든 음식은 오직 선수만이 먹을 수 있고 선수를 위한 음식이라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려니 하고 밖으로 나가 연습을 시작하려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누군가가 협회에 리포트를 해서 선수가 아버지에게 음식을 전달하는 것을 목격하고 벌금을 부여했는데 내 기억으로는 300 달러였던 것 같다. 선수 아버지는 비싼 점심 먹었다고 농담처럼 투덜거렸지만 그렇게 웃고만 넘길 일은 아니었다. 모든 한국선수들이 오해를 살 이유가 되기도 하고 가뜩이나 여러 문제가 있을 땐 이런 작은 실수도 크게 비춰지기 때문이었다. 사실 한국선수만 꼭 음식을 가족과 나눈 것은 절대 아니다. 다른 나라 선수들도 분명 같은 일을 한다. 하지만 왜 한국선수만이 벌금을 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 자주 너무 많이 가지고 나와서 눈에 띄기 때문이다. 시합 때 집중력을 잃는 게 싫고 마음을 빼앗기는 게 싫어서 자리를 옮겨 퍼팅그린으로 갔다. 롱퍼팅을 하기 위해 공 3개를 그린 위에 놓고 굴리고 있는데 하필이면 또 한국선수가 공을 10개 놓고 홀컵 주위를 동그랗게 에워싼 채 짧은 퍼팅을 연습하고 있었다. 그린 위에선 한 선수에게 공 3개 만이 허락됐는데 잘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공 3개만으로 연습해야해"라고 하자 "알게 모야. 난 이게 편하다"는 선수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경기위원이 올라왔다. 그리고 "당장 공을 치우라"고 말했고 위반시에는 경기 실격사유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 그 선수는 놀랐는지 공을 냉큼 집어들고는 나에게 와서 물었다. 그런 룰이 있냐고. 맞다. 있다. 생각해보라. 한 시합에 선수가 144명인데 캐디까지 그린에 올라온다면 가뜩이나 좁은 연습장이 미어터진다. 공을 5개 10개씩 올려놓고 한다는 게 현실적인지. 또 그게 에티켓인지. 더 중요한건 이미 루키 때 그 교육을 받았는데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게 진작 말해줄 때 들을 것이지.

2011-01-07

[여 프로의 LPGA 뒷담화-79] 매일 4언더파만 친다면

컨디션도 좋았지만 월요예선을 일등으로 통과했고 작년 이 시합 이 코스에서 12언더파가 우승을 했다면 나도 찬스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루에 4언더를 4일 동안 치면 우승을 왜 못하겠는가? 나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이번 시합에 올인하고 싶었고 새로 만난 캐디 조이도 매우 만족스러웠다. 조이도 알고 있었다. 이번 시합이 얼마나 중요한지. 첫홀에 티샷을 치고 침착하게 파를 시작으로 전반전을 이븐파로 마감하고 후반전에 돌입했다. 퍼팅이 떨어질 듯 떨어질 듯 자꾸만 돌아 나왔다. 지금까지 연속 세 번. 그래도 최대한 인내를 하면서 같은 스윙 같은 박자로 처음부터 끝까지 하기 위해 같은 발걸음으로 걸었다. 마지막 홀은 파5. 별로 길지는 않지만 세컨샷 떨어지는 자리가 좁은데다가 그린은 땅콩 그린에 매우 길어서 세컨샷이 온그린이 되어도 끝에서 끝에 퍼팅이 걸린다면 아마도 퍼팅을 드라이버 치듯이 아주 세게 쳐야했다. 아니면 그린 위에서 칩샷을 해도 될만큼 길어서 많은 골퍼들은 일단 레이오프를 하고 세 번째샷을 붙여서 버디 찬스를 노렸다. 나는 괜찮은 티샷을 치고 약 230야드 정도의 세컨샷을 남기고는 생각에 빠져있었다. 우드 3번으로 좁은 페어웨이를 무시하고 과감하게 질러볼건지 아니면 안전하게 두 번에 나누어서 칠건지. 사실 한타 한타가 중요해서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지만 잘되면 이글이고 실수가 나오면 보기나 더블로 이어지기 때문에 우드 3번과 아이언 5번을 손에 모두 들고 있었다. 그 때 조이가 한마디했다. "자신있는 걸로 잡아." 그래. 나는 나를 믿는다. 나는 3번 우드를 빼내어 손에 들었다. 그리고 연습스윙을 한 번하고 공 뒤에 서서 공이 그린 위에 떨어져 홀컵 옆에 멈추는걸 상상하며 어드레스를 했다. 그리곤 힘차게 스윙했고 공은 아주 솔리드하게 맞아 내가 본대로 빨래줄 처럼 똑바로 날아갔다. 갤러리들은 "나이스샷"을 연발했고 공은 그림처럼 홀컵 바로 옆에 떨어졌다. 18번 갤러리석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모두 박수를 치며 휘바람을 불었다. 그런데 갑자기 웅성웅성하더니 "오~"라는 감탄사를 냈다. 공은 그린 홀컵 옆에 떨어져 뒤까지 데굴데굴 마구 굴러간 게다. 조이와 나는 타는 속을 감추며 여유있게 걸어가 공의 상황을 보니 정말 그린 끝에 겨우 온이 되어 홀컵까지 한 27 야드의 거리를 두고 있었다. 게다가 내리막 빠른 스피드를 조절해야 했는데 조이는 "경사생각 하지 말고 스피드만 생각해"라며 일단 붙이기 작전을 제시했다. 나 역시도 그 작전에 동의하기에 일단 거리감을 느끼고 스피드에만 집중해 퍼팅을 했다. 공은 뱀처럼 스르르 굴러갔고 관중들이 "와!"하며 탄성을 터트렸다. 순간 나도 들어갔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볼이 홀컵을 한바퀴 돌더니 바로 옆에 아주 얄밉게 서고 말았다. 얄미운 공을 노려보며 걸어갈 때 갤러리들은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내 속은 쓰렸지만 웃으면서 손을 흔들며 홀아웃했다. 결국 1언더로 마감했지만 아직 3일이 더 남았으니 내가 오늘 떨구지 못한 버디들을 모두 떨구고 말리!

2010-12-17

[여 프로의 LPGA 뒷담화-78] 간절한 기도

시합이 후반으로 치달으면서 나는 본선에 들어가기가 힘들어져 또 다시 퀄리파잉스쿨에 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마음이 무거웠지만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는 마지막 월요예선을 치를 오하이오주로 출발했다. 아직 일요일이기 때문에 캐디들은 다음 경기장소에 도착하지 안았다. 나는 또 캐디를 물색해야했다. 프로샵에 들어가서 일단 연습라운드를 위한 캐디를 부탁했다. 조금 뒤 전형적인 백인 소년이 나와서 자기 소개를 했다. 이름은 조이 케주얼이고 오하이오대학에 재학 중이라고 했다. 소년이 아니라 청년이었는데 다부지기도 하고 골프장에서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로 캐디를 하면서 용돈을 벌며 골프 핸디캡도 10정도라고 했다. 괜찮은 듯 보였다. 그렇게 해서 연습라운드를 같이 나갔는 데 눈치가 빨랐고 예의도 바르고 무엇보다 그린의 경사를 읽는 부분에서 섬세하면서도 퍼팅 스타일이 나와 비슷한지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흠! 일단 마음에 들기도 하고 선택의 여유가 없었기에 나는 다음 날 열리는 월요 예선전에 가방을 매달라고 부탁을 하고 숙소로 왔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조이를 만나 연습장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첫 홀에서 티샷을 하고 세컨 샷 거리를 재고 있었다. 140야드 쯤 됐는데 9번을 칠까 8번을 칠까 고민하면서 클럽을 만지작 거리고 있을 때 조이가 한 마디 했다. 핀 뒤에 공간이 겨우 2야드 밖에 없으니 긴 것보다 짧은 게 나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정확하게 거리를 말해주는 섬세함이 마음에 들었다. (대부분의 로컬 캐디는 그런 것까지 신경을 못 쓴다). 전반을 1언더로 마감하고 후반에는 비교적 안정적인 샷으로 버디 찬스가 많이 있었는데 그린의 경사를 거의 비슷하게 읽어 내니까 자신감 생겼다. 결정적으로 경사를 약간 더 보고 덜 보는 것은 내가 결정할 부분인데 그 때마다 조이는 내가 맞다고 맞짱구를 쳐줬다. 그 덕에 후반엔 3언더를 치며 선전했다. 그리고 스코어 카드에 사인을 하고 텐트에서 나와 다른 선수들의 성적을 살피고 있었다. 내 생각에도 이 정도면 확률이 높을 것 같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일등으로 월요예선을 통과해 본선 질출권을 따냈다. 친구들이 축하한다며 어깨를 두드려 주었고 조이는 웃고 있었지만 말이 없었다. 우선 마지막까지 시합을 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오랫만에 좋은 캐디를 만나서 기뻤다. 다음날 라커룸에서 들어가 보니 지난 주 시합을 끝내고 온 선수들이 나를보며" 나이스 라운딩 미니!! 굿잡" 이라며 격려를 해주었다. 나는 이번 기회에 꼭 선전해서 퀄리파잉스쿨에 안가기를 기도하며 대회 첫 날을 맞았다.

2010-12-10

[여 프로의 LPGA 뒷담화-77] 캐디 조건 믿어 말어

상대선수가 먼저 버디를 했으니 난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넣어야만 했다. 신중하게 그린에 경사를 읽었다. 오른쪽으로 홀컵 한개반 정도의 경사를 읽어냈고 스피드를 잘 맞추기 위해 심호흡을 하는데 갑자기 내 캐디가 한마디 했다. "절대로 오른쪽이 아닙니다. 똑바로 쳐야합니다." 순간 헉! 잠시 뒤로 빠져 다시 한 번 경사를 읽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절대 똑바로 갈 것 같지는 않았고 지금까지 그린을 읽을 때 호흡이 맞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신뢰하기 힘들었다. 믿지 못하는 내 얼굴을 눈치챘는지 그는 "이 그린은 모두가 오른쪽으로 경사를 보는데 절대 아닙니다. 똑바로 치세요"하고 거듭 강조했다. 이렇게 간곡하게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순간 망설였지만 결심했다. 내가 본대로 내가 느낀대로 치기로. 그리고 공에 그려놓은 라인을 홀컵 오른쪽에 맞추고 연습을 하면서 거리감을 느꼈다. 그리고 과감하게 퍼팅을 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여태까지 단 한번도 그린을 제대로 못 읽던 내 캐디가 이번 홀에선 정확하게 읽어낸 게다. 공은 얄밉게 단 한 번도 휘지 않고 똑바로 굴러갔다. 으~. 난 파를 기록하면서 연장전에서 줄리에게 마지막 자리를 내줬다. 서로 악수를 하고 축하한다고 했지만 실제 내 마음 속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함께 동반해주신 선생님들도 아쉬워 자리를 떠나시지 못했다. 참. 이게 골프인가 보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장갑을 벗어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괜히 나왔겠는가? 아쉽고 억울하고 발길이 안 떨어졌지만 어쩌겠는가!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는데 민박집에서는 나를 위해 맛있는 한국음식을 준비해 주셨고 오랜만에 한국음식이 한가득 차려있는 밥상을 보니 순간 너무나 기뻐서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이게 얼마만인가? 김치와 나물. 갈비까지. 정신없이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두 그릇째 먹고 있을 때도 선생님은 오늘 벌어진 사건들을 떠올리시면서 아쉬워 하셨다. 사실 꽤 많은 한인교포들이 선수들을 응원해주시고 이곳에서는 매년 "자랑스런 대한의 딸" 이라는 문구를 집앞에 크게 써 놓고 우리들을 응원하신다. 더욱 감사한건 선수들을 위해 김밥까지 싸주시고 떡과 간식까지 준비해 오실 때도 있었는데 많은 선수는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선수를 위해 만들고 싸오신 음식을 선수가 아닌 부모들이 다먹어 버린 일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먹은걸 어쩌겠는가? 다만 열심히 준비해서 선수들에게 전달해 달라고 한 음식을 구경조차 못해본 선수들은 그분들이 누구신지 모르기 때문에 감사인사를 못드린다. 혹시라도 선수들이 무심하게 지나쳤다면 싸가지가 없었던 게 아니라 김밥에 김도 못봤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2010-12-03

[여 프로의 LPGA 뒷담화-76] 다가온 버디찬스

뒤도 안돌아보고 어렵게 생긴 벙커 속으로 쑤욱 들어가는 공을 봤다. '아 왜 하필 오늘 쥐가 난단 말인가!' 속이 상했다. 다음 선수가 티샷을 했는데 정말 똑같은 구질로 나를 따라 벙커로 쏙 빠졌다. 우린 서로 얼굴을 보며 고개를 흔들었고 다음 선수는 우리를 보고 화들짝 놀랐는지 오른쪽 러프로 공이 들어갔다. 오호라. 그렇다면 나도 찬스가 없는건 아니라는 생각에 빨리 걸어가 벙커에 빠진 내 공의 컨디션을 보고 싶었다. 어떻게든 파로 마감하고 다음 홀까지 끌어 봐야 한다는 욕심이 생겼다. 벙커에 도착하자 공은 하나 밖에 없었다. 분명히 벙커에 들어간 걸 보았는데 공이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없어진 공을 찾기위해 러프를 샅샅이 뒤지고 있었는데 그 홀을 지키고 있던 경기진행원이 "공은 벙커에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나와 다른 선수는 벙커 안을 구석구석 살피고 있었는데 벙커 앞쪽에 너무나도 깊이 박혀 겨우 공인지 알 정도로만 살며시 고개를 내논 그 공이 서로 자기 것이 아니길 바라며 우린 확인에 들어갔다. 나는 캘러웨이였고 그 선수는 타이틀리스트였는데 벙커 가운데 그래도 얌전하게 앉아 있는 공이 다행히 내 것이었다.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그 공은 그 선수 것이었다. 그 선수는 뭐(?) 씹은 표정이었다. 괜히 나까지 미안해질 만큼 황당한 라이였지만 어쩌겠는가! 먼저 나는 거리를 계산하고 신중하게 클럽을 골랐다. 최대한 하체를 고정하고 공만 쳐내어 그린에 올려놓을 작전으로 심호흡을 하고 집중해서 샷을 했다. 그리곤 "굿샷"이라는 선생님들의 환호소리를 듣고 홀컵 근처에 근접했음을 예상했다. 그리고 다음 차례인 그 선수는 한참이나 생각하더니 샌드웨지를 꺼내 일단 10야드 앞에 떨어뜨리고 세 번째 샷을 붙여 파를 노리는 계획을 짠 것 같았다. 실제 그 선수는 10야드 샷을 쳤다. 또 오른쪽 러프에 빠진 선수가 공을 쳤는데 갤러리들의 환호가 들렸다. 그 뜻은 버디찬스라는 사인이었다. 그린에 올라가 보니 나는 4미터 그 선수는 4.5미터 서로 반대쪽에서 버디를 노리는 상황이었고 한 선수는 파를 치는 상황이라 가망이 없었다. 내가 그린을 열심히 읽고 있을 때 상대 선수가 먼저 퍼팅을 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땡그렁. 버디를 한게다. "나이스 버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아! 그렇다면 난 이 퍼팅을 꼭 성공해야 하는데 그린의 경사가 쉽지 않았다.

2010-11-26

[여 프로의 LPGA 뒷담화-75] 시집가는 날 등창난다더니…

다운스윙을 시작할 때부터 몸이 경직되더니 드디어 다리에 쥐가 났다. 일단 공은 맞았는데,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순간 모두들 놀랐고, 어쩔줄 몰라하는 나를 보고 응원차 오신 의사 선생님이 티박스로 급히 올라 오셔서 바로 다리를 주물러 주셨다. 얼마나 아픈지 몸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는데, 날씨도 날씨였지만 땀을 흘리시며 내 다리를 주물러 주시는 선생님께 감사하면서 죄송했다. 시간을 더 끌 수가 없어 나는 일어나야만 했고 아픈 다리를 질질 끌면서 다시 코스로 걸어 나가 공을 찾아서 쳐야했다. 다행히 오비가 나진 않았지만 슬라이스가 심하게 나서 일단 페어웨이로 쳐내고 겨우 보기로 마쳤다. 버디를 하나 더 뽑아야 하는 상황에 보기를 했기에 다리가 아픈건 둘째 치고, 속이 상해 더 바짝 긴장했다. 17번 티박스에서 스윙을 해보았는데, 역시나 풀스윙이 나오질 않았고, 체중 이동은커녕 다리를 어떻게 하질 못했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스윙했고, 비슷하게 페어웨이로 공을 날린 후 150야드에서 8번을 치던 나는 7번으로 가볍게 공만 쳐냈다. 그리곤 파를 기록했다. 마지막 홀에선 꼭 버디를 뽑아야 하는 걸 알았기에 마지막 스윙을 힘차게 하려고 했지만 역시 무리였다. 훅이 심하게 나서 왼쪽 언덕으로 굴러가는게 보였다. 하필이면 이때 쥐가 나다니. 평소에 쥐가 자주 나는 터라 스트레칭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 황당하게 시합 때 날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게다가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머리 속엔 온통 억울한 이 상황과 아픈 다리에 통증으로 속이 시커멓게 상했다. 또다시 보기를 한다면 가능성이 없기에 침착하게 세컨샷을 그린 주위에 가져다 놓고, 업앤다운으로 파를 세이브하는 작전으로 세컨샷을 쳤다. 그리고 그 작전대로 난 파를 기록하고, 2언더로 마무리를 했다. 스코어 카드를 내고 나오자 갤러리로 오셨던 선생님들이 너무너무 아쉬워하셨다. 나보다 더. 어이없어하고 있는차에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나서 보니 두명을 뽑는 월요 예선에 한 명이 3언더로 패스하고 동타, 즉 3명이 2언더를 쳐 한자리를 놓고 플레이오프를 펼쳐야 했는데, 나와 다른 두 선수가 나가게 된 것이었다. 한 십분 쯤 시간을 주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은 연습장에서 다시 웜업을 하러 갔을 때, 나는 의자에 앉아 바지를 걷고 마사지를 하는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우리 셋은 1번 홀로 향했고 나는 뻣뻣한 다리를 이끌고 또다시 스윙을 하려고 했는데, 역시나 훅으로 말리면서 왼쪽 벙커에 빠졌다. 아, 왜 하필 이런 날!

2010-11-19

[여 프로의 LPGA 뒷담화-74] 잘 나가다 꼬이는 월요 예선

화려한 시합 중에는 서로 보이지 않는 스파크가 늘 튀었고, 어쩌면 당연한 듯 그러려니 하며 흘러갔다. 어느새 시합은 후반기에 접어들었고, 내년 풀시드가 어려운 선수들이 몰리면서 월요예선엔 30-40명씩 몰렸다. 사실 올해 내 별명이 ‘먼데이 퀸’이었는데 그 이유는 월요 예선을 벌써 6번이나 뚫고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늘 월요예선이 자신있었다. 하지만 선수가 그렇게 몰리면 아무래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내년 시드권을 따려면 더욱 바짝 긴장해야했다. 일요일 오후에 도착한 민박집에는 너무나 좋으신 한국부부가 살고있는 집이었고 골프를 너무나 좋아하셔서 집도 골프장 안에 있었다. 더욱 신나는건 김치! 한국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하나 더. 아저씨는 의사선생님이라 그동안에 궁금했던 알러지 증상까지 낱낱이 여쭤볼 수 있었다. 내일의 화이팅을 외치며 잠자리에 들었고, 다음날 아침 월요 예선을 위해 일찌감치 골프장으로 갔다. 지난번 캐디를 했던 마이크가 가방을 매주기로 했지만 어제 본선에 들어간 선수의 캐디를 할 경우엔 오늘 도착하기가 힘들다는 걸 알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로컬 캐디를 찾아야만 했다. 지난번에 어이없는 로컬 캐디 때문에 눈물을 흘렸건만 스폰서가 없는 나는 겨자를 또 먹어야만 했다. 모르는 코스를 감으로만 쳐야 했기에 캐디 선정에 신중을 기했다. 그리고 드디어 예선이 시작됐고 첫홀부터 버디를 잡고 나갔다. 캐디는 매우 적극적이었는데, 방향 잡을 땐 많은 도움이 됐지만 그린을 읽을 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서로 읽는 라이가 계속 반대이다 보니 오히려 머리만 복잡해졌다. 그래서 두세홀 뒤에는 경사를 전혀 물어보지 않았다. 홀을 치면서 보니 집주인 아저씨가 친구들과 함께 나를 응원하러 나오셨다. 나는 응원에 힘입었는지 전반을 3언더로 마감했고 후반을 맞았다. 이번 시합은 상금이 컸기 때문에 꼭 예선에 들어가 상금을 받아야 퀄리파잉 스쿨에 갈 필요가 없고 또 돈을 아낄 수 있었음을 알기에 더욱 신중했다. 계속 맞이한 버디찬스를 계속 놓쳤지만 샷도 좋고 감이 좋아 찬스만 기다리고 있었다. 16번홀 티박스에 올라가 힘차게 스윙을 하는 순간 으악!!! 온몸이 경직되는걸 느꼈다. 이게 웬일인가! 왼쪽 다리에 쥐가 난게다. 하필이면! 얼마나 황당하고 아팠는지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2010-11-13

[여 프로의 LPGA 뒷담화-73] 치사한 심리전 펼치는 아저씨]

그 날 그 아저씨는 자기를 도와주지 않은 것에 대해서 나에게 몹시 불만이었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의 연발이었다. 본인의 딸이 양심적이라 아무도 못 본 투터치를 스스로 선언했다며 딸 자랑에 침이 마르지 않았는데 많은 선수들은 그것이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아저씨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제발 본인 딸이나 응원하시지. 열심히 퍼팅연습을 하고 티박스로 나가려고 하는 나에게 "역시 이상해"라며 말을 건넸다. 내가 "뭐가요?"라고 묻자 "우리딸이 그러던데? 여프로 퍼팅폼이 웃긴다던데 역시 그렇군!" 시합 첫 날 첫홀로 가는 나에게 초를 치며 던진 말에 더 이상 그 아저씨를 사람으로 보기 힘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고 넘길 일인데 왜 그땐 말 같지도 않은 한마디 한마디를 되씹고 생각하고 상처받았는지 모르겠다. 라운딩이 끝나자마자 퍼팅그린에서 연습하고 있는 그 아저씨 딸을 발견한 나는 "야 네 폼은 더 웃겨" 라고 내뱉자 어이없다는 듯이 "언니 그게 무슨 소리야"라며 황당해 했다. 듣는둥 마는둥 등을 돌리며 연습을 재개했는데 한 십분 쯤 후에 역시나 기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 아저씨가 쏜살같이 내게로 와서 하는 말. "너 말조심해. 너랑나랑 싸우면 누가 이길 것 같냐?" 그래서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이렇게 말했다. "글쎄? 길고 짧은건 대봐야 알겠고 당신이나 똑바로해." 그동안 참고있던 감정들이 나도 모르게 쏟아져 나왔다. 격분한 내 모습을 본 후배가 나를 말리며 하는말. "언니 우리 비싼 돈 들여 외국에 나와서 죽도록 운동만 하는데 저런 사람 말에 휘말리면 안돼. 아휴 나도 확 시집이나 가야지!"라며 내 손을 낚아채더니 라커실로 끌고 갔다. 먼저 와있던 후배들이 흥분한 나의 이야기를 듣더니 "속이 시원하다"며 통쾌해 했고 나름 쌓여있던 할 말을 내가 뱃어준 것에 고마워 박수를 치는 선수도 있었다. 그 때 저쪽 뒤에서 K선수가 나오더니 "잠깐! 언니한테도 그랬어? 지난주엔 나한테 그러던데!" 순간 우린 서로 얼굴을 보며 벌어진 입을 다물질 못했다. 같은 한국선수들의 사기를 살리진 못할 망정 어떻게든지 심기를 불편하게 하려는 그 아저씨를 우린 이해할 수 없었고 덕분에 죄없는 그 딸까지도 가까이 지낼 수 없었다. 왜 그랬을까? 벌써 7-8년이 지난 오늘 생각해보면 다른 방법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지금은 더 많은 한국선수들이 시합을 뛰고 있을텐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다만 내 앞에 다녀간 한 선수가 유럽으로 건너가며 내게 했던 마지막 말이 생각난다. "언니 어른이라고 다 어른이 아니야. 내가 얼마나 상처받고 울면서 지냈는지 언니도 알게 될꺼야. 그리고 저 사람 조심해." 서 프로 그 때 그게 무슨 말이었는지 나도 시간이 지난 후 알았어. 잘 있지?

2010-11-05

[여 프로의 LPGA 뒷담화-72] 속이는 골프 이제 그만!

영어를 할 수 있는 본인의 딸은 연습을 해야하기 때문에 시간이 매우 소중했고 관계없는 내 시간은 아무렇지 않다는건가?! 정말이지 상식이하의 태도들은 나의 인내를 시험했다. 목소리가 커지자 난 바로 그 자리를 빠져 나왔고 다른 선수들과 캐디들이 모여들었다. 최대한 열을 가라 앉히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 퍼팅그린에서 다시 공을 굴리기 시작했다. 얼마 후 캐디들 사이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파다하게 소문이 났다. 이유인 즉슨 지난주 그 캐디(내 기억으론 그렉이였던 것 같다)가 그 선수의 캐디를 봤는데 러프가 워낙 길어서인지 선수가 공을 치면서 투터치를 했었다는 게다. 페널티를 스스로 줘야 한다는 의미다. 대부분의 경우 선수가 먼저 투터치에 대한 선언을 하고 스코어 카드에 페널티를 부과한 점수를 쓴다. 가끔 선수가 콜을 하지 않을 때 동반 라운딩 선수나 캐디들이 지적할 때가 있다. 이럴 땐 분위기가 어색해지면서 약간 언성이 높아지곤 한다. 진정 프로 선수라면 투터치를 했는지 안했는지는 본인 스스로가 더 잘 안다. 당연히 양심적으로 투터치를 인정해야 한다. 아마 골퍼들도 이런 일로 언성을 높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선수가 '언성이 높아질 일은 하지 않았다'다고 발뺌했을테지만 어쨌든 이 사건은 선수가 투터치를 했는데 다음홀까지 선언을 하지 않아서 그렉이 "너 아까 투터치 했어"라고 말을 한 데서 야기됐다. 선수는 "끝나고 얘기하려 했다"고 주장했고 캐디는 "그 자리에서 선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로 이번 주에 그 선수로부터 아니 그 선수 아버지로부터 캐디는 해고통보를 받은 것이고 나는 멍청하게 도와준답시고 같이 갔던거다. 조금 조용해진 뒤 난 그렉에게 가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조용하게 해고를 받아들인 그렉에게 오히려 감사했다. 얼마 전 LPGA투어 중 두 한국선수가 공이 서로 바뀐 채 플레이를 한 후 스코어 카드를 적어내 논란이 일었다. 이들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며 얼버무리다가 그 팀의 캐디가 본인의 홈피에 글을 올려 이들 선수들이 뒤늦게 실격처리됐다. 덕분에 한국선수들이 전체적으로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사실 골프를 치면서 단 한 번도 부정을 안했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일게다. 하지만 프로 선수는 일반 골퍼와 달라야 한다. 프로는 돈으로 이야기 한다고들 하는데 그 전에 조건이 있다. 정정당당하게! 진심으로 골프를 대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2010-10-29

[여 프로의 LPGA 뒷담화-72] 염치없는 인사들

그렇게 황당한 '캐디 사건'을 뒤로 하고 나는 사우스 캐럴라이나를 벗어나 다음 대회장소로 이동했다. 세상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몇 가지로 구분이 되는 것 같다. 마음이 따듯한 사람 현명한 사람 거짓말로 사는 사람 용기없는 사람 아직 자신이 누구인지 찾지 못한 사람 나 같은 사람 등등. 살면서 깨닫고 또 발전하기 위해 늘 마음을 열어 놔야 하는데 아직 그러기엔 내가 너무 작았다. 이러 절너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 새 다음 경기 장소에 도착했다. 선수들이 퍼팅그린에서 벌써 공을 굴리고 있었다. 연습장에서 샷 연습을 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차를 세우고 가방에서 공을 꺼내 퍼터를 들고 연습 그린에서 그린스피드를 체크했다. 다른 선수들이 나를 보자 " 오! 미니 안타깝다. 다음엔 캐디를 잘 보고 선택 해"라며 충고와 격려를 주었다. 워낙 '빅마우스'인 마이크가 벌써 소문을 다 내서 모두가 알고 있었다. 워낙 같은 사람들이 계속 투어를 하다보니 비밀같은 건 있을 수도 없었다. 바로 그때 한 한인선수 아버지가 내게로 왔다. 그리고는 통역을 도와 달라며 정중하게 부탁을 해서 잘하는 영어는 아니지만 선뜻 알겠다고 했다. 무슨 일 인지 묻자 나를 데리고 그린 밖에 앉아 있는 캐디쪽으로 갔다. 우리가 그 캐디 앞에 서자 그 캐디는 팔짱을 끼더니 얼굴이 굳어졌고 아저씨는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너가 그럴 수 있냐! 넌 해고다" 라며 흥분했다. 그 상황을 나한테 통역을 하라는 데 나원 참! 한 마디로 "유 파이어" 아닌가? 나 역시 당황스러워서 입을 열지 못 하고 있는 데 눈치 빠른 캐디는 "유 고! 아이 돈 원어 톡 투 유!"라며 아저씨를 외면했다. 아저씨는 캐디의 그 말에 더욱 불쾌해서 열을 내고 있었다. 그러자 주위 선수들과 캐디들이 몰려 들었고 두 사람의 신경전은 계속됐다. 의외로 캐디의 태도가 아주 단호했는데 무슨 일 인지를 알수가 없었다. 다만 지난 주 이 캐디는 이 아저씨 딸의 캐디를 했다는 것 밖에. 모여 든 다른 사람들에겐 나와 캐디 그리고 아저씨가 싸우는 것처럼 보여졌을 터였다. 때 마침 그 아저씨의 딸 그러니까 선수가 "아빠 왜 그래! 언니 미안해요! 내가 이야기 할께요" 라며 상황을 정리하려 했다. 그러자 그 아저씨는 "넌 시간 없잖아. 빨리 가서 연습해"라며 돌려 세웠다. '세상에!' 생각해 보니 그 선수는 외국 생활을 한 선수라 통역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호라~. 이 아저씨가 내 도움이 필요한 건 통역이 아니었다. 어떻게 자기 딸 시간은 중요하면서 내 시간은 중요하지 않단 말인가? 이런 행동을 하는 몇 사람 때문에 선수 아버지들이 덩달아 구설수에 오르는 게 아닌가? 정말 염치없는 아저씨였다. 슬며시 화가 났다. '에라 이 염치없는 인간아~'란 말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2010-10-22

[여 프로의 LPGA 뒷담화-71] 어이없는 캐디사건

티샷을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게 일단 치고 나갔다. 같이 라운딩을 하던 선수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로컬캐디의 단점을 지적했다. 한 세홀쯤 지나 마음을 진정시키고 (이미 보기를 두개나 했기 때문에) 샷에 몰두하려 하는데 어떤 아저씨가 로프 밖에서 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본인은 오늘 캐디를 하려 했던 학생의 아버지인데 할아버지가 위독해서 어제 저녁 아들이 급히 할아버지 집으로 갔다고 했다. 그리고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는데 그말을 듣고 있던 마이클(캐디)이 한마디 했다. "그렇게 위독하다면 댁은 왜 안갔소?!" 순간 나도 흠! 맞아. 왜 안갔을까하고 의문스러웠다. 그러자 아저씨는 멈칫하더니 "전부인 아버님 일이라 안갔습니다"라고 말했다. 어쨌든 미안하다며 응원차 나를 따라다니겠다며 파이팅을 외쳤다. 뒤에 있던 선수가 나를 보면서 또 한마디 던졌다. "그려." 으~. 정말 신경쓰여. 집중 집중 집중하고 싶었다! 전반을 엉망으로 치고 백나인도 엉망이었는데 16번홀 그린 뒤에 첫날 캐디를 했던 학생이 보였다. 그리고 말없이 마지막 홀까지 조용히 지켜보고 있더니 내가 텐트에서 스코어 카드에 사인을 하고 나오자 하는 말. "정말 미안합니다." 나는 그건 학생 잘못이 아니니까 미안해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사전에 말도 없이 안 나온 친구의 잘못이지만 할아버지가 위독하시다니 어쩌겠냐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학생이 하는 말에 넋을 잃었다. 자신도 아침에 그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아저씨는 이혼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친구집으로 쳐들어 갔더니 그 친구는 밤새 술이 떡이 되도록 마셔 아침에 못일어났다는 거다. '어찌하오리!'  아버지는 혹시나 아들에게 화살이 날아올까 뒤늦게 나마 스토리를 만들어 온 것이었다. 참! 이런 일도 다 겪어본다. 어이없어 하는 날 보던 친구들이 그 녀석을 가만히 두면 안된다며 더 야단이었다. 왜냐하면 고등학생이어서 더욱 그랬다. 그래도 이 착한 학생은 진심으로 미안해 했고 끝까지 확인사살(?)까지 쏜 것이 은근히 고마웠는데 그 학생이 대뜸하는 말이 "그 친구는 이제 더 이상 제 친구가 아닙니다"라고 했다. 소문은 금새 퍼져 아까 만났던 사장님이 나에게 오셔서 또 한마디 하셨다. "그 학생. 오늘부터 우리 골프장 출입금지입니다.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결국 이 사건으로 그 학교 골프팀에까지 민폐를 끼친 셈이다.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가?! 결과는 좋은 성적으로 예선을 통과하고 난 결국 70명중 69등을 한게다. 어이없는 캐디사건에….

2010-10-01

[여 프로의 LPGA 뒷담화-70] 갑작스런 캐디의 실종

감좋은 이 때 비로 시합이 늦춰졌지만 예선을 무난히 통과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캐디를 할 친구를 소개받았다. 고등학생 티가 풀풀나는 금발에 주근깨가 가득한 청년이었다. 대충 우리가 했던 사인과 코스공략을 설명하고 다음 날 만나기로 했다. 나는 연습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뒤를 돌아보니 훌륭한 예선전 캐디가 열심히 뭔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아저씨는 어느 때와 같이 강아지를 돌보느라 바빴고 아주머니는 마침내 쌓아왔던 불만을 터트렸다. 아저씨는 일이 끝나고 집에 오기가 무섭게 개부터 찾는데 이 때문에 아주머니가 몹시 서운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개보다 못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럴리가 없을거라며 아주머니를 위로했다. 하지만 나는 아저씨가 지난 번 강아지를 안아줄 때 했던 말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 우리 마누라가 이렇게 나를 반겨주면 얼마나 좋겠어. 늘 찬바람이여!" 흠~. 그렇다고 아주머니께 사실을 말하기도 곤란해서 일단 입을 닫았다. 자리도 피할 겸 내 방으로 올라와서 출전 준비를 마치고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음 날.  티 타임이 오전 10시였는데 8시에 만나기로 한 학생이 보이지 않았다. 먼저 연습장에 가서 연습공을 치면 오겠다 싶어 연습장에서 연습을 시작했다. 9시가 넘었는데도 학생이 보이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이 들어 프로샵에 들어가 헤드프로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혹시 모르니 다른 사람을 물색하라고 하는데 지금 이 상황 이 시간에 어디서 물색하나?  퍼팅연습에 몰두해야 하는 이 시간에 나는 캐디를 물색해야 했고 열은 열대로 받고 동시에 초조함에 불안함까지 엄습해 왔다. 하필 이런 때…. 난 티 타임 5분 전에 캐디를 찾았다. 예선을 탈락한 선수 캐디가 아직 다음 시합장소로 떠나지 않고 있었다. '컨트리클럽'이라는 별명을 가진 투어 캐디 마이클을 고용하고 재 빨리 티박스로 갔다. 그 때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데 뒤를 돌아 볼 여유도 없었다. 끈질기게 나를 따라온 사람은 나이가 있어 보이는 신사분이었는데 자신을 골프장 사장이라고 소개하며 이 상황이 너무 미안하다며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하지만 사과를 받고 안받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이미 선수들은 티그라운드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허겁지겁 스코어 카드를 받고 주머니에서 티를 찾아내어 드라이브샷을 해야 했다. 어찌하오리!!!

2010-09-24

[여 프로의 LPGA 뒷담화-69] 2라운드도 무사히

월요예선을 캐디덕에 통과하고 헤드프로와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나를 따라다니던 아저씨. 아니 학생 아버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저녁을 쏘고 싶다고 하셨다. 빠른 정보망에 훌륭한 아들까지 두신 아버님은 매너도 좋으셔! 우리 모두는 아버님을 따라 골프장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도착한 레스토랑은 그 동네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이탈리안 식당이었다. 식사를 하는 내내 아버님은 설계 때부터 만들기까지 그린의 비밀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드디어 이번이 기회인 것 같았다. 이렇게 코스를 환히 꿰차고 있는 캐디를 만났으니 은근히 욕심이 났다. 나는 정중하게 이번주 내내 캐디를 해주십사 부탁을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본분이 학생인지라 학교에 가야만 했다. 나는 아주 끈질기게 부탁을 했다. 심지어 상금의 20%까지 줄 용의가 있다며 설득에 나섰지만 결국 이틀만 할 수 있고 마지막날은 친구를 소개 시켜주기로 했다. 정말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민박집 주인 아줌마와 아저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더 반가운 강아지들이 마당에서 뛰어 놀고 있었다. 우와~. 정말 오랜만에 컨디션도 좋았고 떨어진 자신감도 생겼다.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렸던 시합날. 나보다 더 긴장한 고등학생 캐디는 오히려 날 편하게 했다. 순진한 모습을 보아서 그런지 아니면 내 막내동생이 생각나서인지 편안한 라운딩을 했고 오늘도 사인이 척척 맞았다. 잠깐 리더보드에 내 이름도 짬짬히 보였다. 하늘을 보니 약간씩 흐려지는 것 같았는데 비가 올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가 거의 끝날 때쯤 비가 왔다. 난 오전조라 비를 피했고 다행히 성적도 좋았다. 여전히 학생 아버지와 학생 캐디는 리더보드에서 내 순위를 보느라 정신없었고 나는 비를 맞으면서 연습공을 쳤다. 난 정말 내일이 기다려 졌다. 이렇게만 진행 된다면 떨어진 자신감이 급상승되어 앞으로 남은 시합 때도 밀어붙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오후시합이 중단됐다. 그 뜻은 오늘 경기를 종료하고 내일 다시 와서 쳐야하는데 문제는 스케즐이 바뀌는건 둘째치고 기다리는 지루함과 컨디션 조절이 중요했다. 하필 이럴때 비가 오다니…. 어쩔 수 없이 나는 집으로 갔다. 다음날 비는 오지 않았지만 코스가 흠뻑 젖어 어제 끝내지 못한 선수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지만 어쩌겠는가. 그것 또한 운인걸!

2010-09-17

[여 프로의 LPGA 뒷담화-68] 월요예선 1위 통과

이번 시합은 월요예선을 거쳐야 했다. 연습 라운딩을 부랴부랴 치고 내일을 위해 캐디를 물색중이었다. 이번 시합코스는 샷이 문제가 아니라 그린을 정말 잘 읽어야 했기 때문에 나는 프로샵으로 들어가 헤드프로에게 내 소개를 하고, 월요예선을 위해 이 코스를 잘 아는 사람을 소개시켜 달라고 부탁을 했다. 헤드프로는 정말 너무나도 친절했다. 그리고 전화기를 들더니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내가 아끼는 청년이 있는데, 그 친구 말만 들으면 문제없으니 시키는대로 하면 된다며 10분 뒤 연습장으로 가보라고 했다. 급한 마음에 나는 바로 연습장으로 가 앉아 있었다. 조금 있으니까 고등학생 처럼 보이는 소년이 내게 와서 정중하게 자기 소개를 하며 “이 코스는 지을 때부터 잘 알고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린의 구석구석까지 알고 있다는데, 나이는 어리지만 왠지 믿음이 갔다. 특히 말끝마다 ‘예스 맴(Yes, ma’am)’ 노 맴(No, ma’am)을 붙여가며 이야기해서 귀엽기도 하고, 남쪽지방 청년들만의 독특함에 은근히 정이 쏠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 청년을 고용하고 내일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30분 먼저 갔었는데, 그 청년은 벌써 연습장에 나와 있었다. 그리고 연습공을 치기 시작하자 내 클럽을 꺼내더니 그립부터 샅샅이 닦는 게 아닌가! 보통 투어 캐디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작은 디테일한 부분을 청년이 하는걸 보니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퍼팅그린에 올라가 서로의 싸인을 이야기 했다. 그린에 경사가 워낙 심해 나로써는 그야말로 모험이었는데, 청년이 그린에서 손가락으로 포인트 해주는 곳을 치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는 천천히 1번홀로 걸어가는데, 덩치가 아주 큰 아저씨가 우리를 따라 다녔다. ‘그러려니’ 하면서 텐트에 들어가 스코어카드를 받고, 선수들과 악수를 하고 티샷을 날렸다. 그리고 세컨샷. 첫홀부터 그린에 경사가 심해 머리 속이 복잡했는데, 그 청년이 아주 어이없는 곳을 손으로 포인트 했다. 하지만 ‘한번 믿어보자’ 생각하고 거리감만을 생각하면서 쳤다. “땡그렁.” 믿을 수 없는 심한경사를 뚤고 난 버디를 기록했다. 우와!!! 상상할 수 없는 기대에 그 청년에게 또다시 포인트를 주어야 했다. 다음 홀도 무난히 그린에 올려 퍼팅을 하는데 청년이 한마디 했다. “여긴 절대로 오르막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리막이니 조심해야 합니다.” 흠~. 대체 믿을 수 없지만 지금까지 틀리지 않았으니 믿기로 하고 살살쳤다. OMG(오마이갓)!! 또 맞았다. 내리막이었다. 나를 빼고 다른 선수들도 비슷한 위치에 있었는데 불행하게 그린 밖으로 공이 줄줄 내려가는 모습에 난 어찌할바를 몰랐다. 그렇게 난 그 청년 덕에 스코어가 괜찮았다. 라운딩이 끝나고 텐트에 들어가서 싸인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데, 아까 우리를 따라 다니던 덩치 큰 아저씨가 나에게 오더니 “축하합니다. 일등하셨어요!”라며 웃었다. “어떻게 아세요?”라고 물으니 아저씨는 정보통이 워낙 빨라 월요 예선에 나온 선수 성적을 꿰차고 있었다. 얼마후 라운딩을 모두 마치고 성적을 포스트 했다. 그리고 그 아저씨 말처럼 난 일등으로 예선을 통과했다. 정말 청년의 도움이 컸다. 그 때 헤드프로가 나와서 나에게 축하한다며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하는 말. “그분은 이 골프장 기획자이고 그 청년은 그분의 아들입니다.” 어쩐지!

2010-09-10

[여 프로의 LPGA 뒷담화-67] 또 이상한 민박집

서글픈 마음을 쓸어내고 나는 사우스 캐롤라이나로 출발했다. 확실히 남쪽 지역은 덥고 끈적끈적해서 모기가 극성이었다. 땀이 줄줄 흐르면서 피곤이 더 느껴졌지만 난 행군을 계속했다. 생각없이 운전을 하다 보니 어느새 노스 캐롤라이나를 지나 목표지점으로 가고 있었다. 나는 이번에 묵게 될 민박집에 전화를 걸어 내 위치를 이야기했다. 친절하게도 한 햄버거 가계에서 나를 만나 집으로 안내해 주신다고 했다. 얼마 후 집주인 아저씨를 만나 집으로 갔는데 골프장 안에 있어서도 좋았지만 넓고 조용해서 더욱 좋았다. 아저씨는 모 회사 엔지니어였고 사냥을 좋아해 사냥개를 키우셨는데 개에 대한 사랑이 대단했다. 나 역시 강아지를 좋아해서 한 번은 버려진 개를 데리고 있다가 무료로 분양하는 모임까지 만들기도 했었다. 집에 도착한 아저씨는 만사를 제쳐놓고 사냥개들을 체크하셨는데 그 정성이 대단했다. 우선 개를 위해 따로 지은 건물에는 확실한 에어컨디션과 히터가 있었다. 또 개에게 늘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신다고 했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사료(사람이 먹는 음식보다 더 비싼)를 수입해서 본인이 직접 만든 정성스런 유기농 음식과 믹스해서 매 끼니마다 준다고 했고 마지막으로 개 집이 내 방보다 더 깨끗해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는 일일이 개 이름을 부르며 나에게 소개시켜 주셨다. 갓 태어난 귀여운 강아지 세 마리가 엄마 젖을 빠는 모습도 보였다. 한 시간 가량 개 소개를 하고 있는 데 부인이 와서 이제 그만하라며 나를 데리고 방으로 안내했다. 내 방은 따로 지은 게스트 하우스로 최근 지은 새 건물이었다. 난 아주머니를 따라 짐을 들고 거실로 올라갔다. 거실에 짐을 놓는 순간 난 또 다시 놀랐다. 벽마다 아저씨가 사냥을 갔다가 잡은 동물들을 박제를 해 놓았는데 별의별 동물이 다 있었다. 사실 무서울 정도로 많이 있었는데 동물의 얼굴만 잘라 만든 박제로 가득찬 공간에 나 혼자 덩그러니 있으려니 은근히 겁도 났다. 눈치를 챈 주인 아주머니는 '다 죽은 녀석들이니 걱정말라'며 나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식사가 거의 준비되었으니 슬슬 내려 오라고 하셨다. 나는 옷을 갈아 입고 마당으로 갔다. 바베큐가 한창이었는데 고기를 자세히 보니 소고기도 아닌 것이 돼지고기도 아닌 것 같았다. 아주머니는 사슴고기를 먹어보았냐고 물었다. 아뿔싸 그럼 이 고기가 바로 사슴. 주인 아저씨가 사냥 나가서 잡은!!! 아직 한 번도 안먹어 보았다고 했더니 아주머니 왈 "여기서는 비둘기도 잡아 먹는다오." 우와! 진짜로?

2010-09-03

[여 프로의 LPGA 뒷담화-66] 참 어른이 드문 세상

조용해진 연습장에서 나는 다시 연습을 했다. 대부분의 경우 선수가 예선에서 떨어지면 다음 대회 장소로 이동하거나 쉬지만 내 생각은 좀 달랐다. 찾아내고 싶었다. 내 안에 소리치는 용기없는 나를. 쑥스럽지만 다시 연습하고 싶었다. 다음을 위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연습장에서 공을 치고 있는데 내 캐디가 나를 보며 뛰어왔다. 그리고 내년에 다시 잘해보자고 했고 오전 라운딩이 끝난 선수들이 하나 둘씩 오더니 "미니 힘내!" 라며 미소를 던져 주었다. 속상했지만 은근히 힘이 날려고 하는데 한국의 모 선수 아버지가 나를 보더니 큰소리로 한마디했다. "야! 여민선! 넌 이빨 빠진 호랑이냐? 이제 그만하고 애나 낳아!" 나는 그 말을 듣고 한참이나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농담인가? 어떻게 저런 말을 서슴없이 한단 말인가? 머리 속에 스치는 너무나 많은 말을 난 내뱉지 못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 아저씨는 멍하니 서있는 나를 보더니 껄껄 웃으며 자기 딸에게로 걸어갔다. 한국말을 이해 못하는 미국 친구들이 내 표정을 보며 다가와서 무슨 일인지 물어봤다. "저 아저씨가 나더러 집에 가서 애나 낳으라네!" 말이 끝나자 친구는 얼굴이 빨개지며 가만두지 않겠다고 열을 냈다. 나는 그 날 이후 다시는 그 아저씨를 어른으로 보지 않는다. 그 날 이후 인사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럴 가치도 없는 인간이라고 마음 속에 찍어두었으니까. 정말 마음에 상처가 됐다. 내가 아는 어른은 참 많이 없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구하다더니 이럴 때도 적용이 되는가 보다. 고맙게도 친구들이 더 흥분을 하니 맘이 편해지는 건 왜일까. 나 역시 속물이니까 그럴까? 아니면 이 세계가 그렇게 치열하고 서로 잘 되는걸 못보는 밀치고 당기는 무대라서 그럴까? 내가 아는 골프는 상대방과 싸우는 것이 아닌 골프코스와 싸우는 것이며 나의 최고의 기량이 나올 수 있도록 편안하고 기쁜 마음으로 라운딩을 하며 서로를 배려하는 신사적인 게임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닌가보다. 또 다시 슬퍼졌다. 어깨에 힘이 빠진 채 민박집으로 왔다. 식구들은 축 늘어진 나를 보더니 뉴욕시내 구경을 시켜주고 싶다고 해서 나는 주저없이 식구들을 따라 나섰다. 생전 처음 자유의 여신상을 가까이 보았다. 뉴욕 박물관과 타임스퀘어까지 일일이 볼수 있는 영광을 주셨다. 뉴욕에 있으니 꼭 뉴욕 피자를 먹어야 한다며 나를 안내했고 우린 아주 오래된 피자집을 찾았다. 얇고 파삭한 피자를 먹으며 이틀만에 벌어진 모든 사건들이 내게는 정말 엄청난 일들이었고 아프고 상처가 났지만 그만큼 나는 성장할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세상은 크고 넓고 내가 겪은 일쯤은 베시 킹선수 말처럼 어쩌면 괜찮은 아주 괜찮은 작은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 그 아저씨에게 할 말이 있다. 아저씨. 여자가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게 쉬워 보이셨나 봐요? 세상에서 가장 힘든 건 골프를 잘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되는 거 랍니다. 저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를 존경합니다. 그 어려운 일을 당연하 듯 묵묵히 해내고 있으니까요!

2010-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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